그때 제 친구가 들어오는 걸 보고 선호가 손을 흔들었다.

야, 왜 이렇게 늦게 와. 아니 여기 화장실이...

투닥거리는 둘을 물끄러미 보던 민현이 스윽 일어선다.



"나 갈게."

"벌써 가게?"



가는 건가... 길에서 우연히라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침을 꿀꺽 삼키며 올려다보는데, 민현이 씩 웃으며 제게 손을 내민다.



"선호야, 가자."

"응...?"

"아 유선호도 가?"



그...나랑 합의된 상황은 아닌데 말야.

민현과 눈이 마주치자 손으로 밖을 가리키며 안가? 라고 말해온다.

이럼 갈 수 밖에 없지 싶어 겉옷을 챙기며 친구에게 손을 흔들었다.



"응, 미안. 담에보자."




시끌벅적하던 곳에서 나와 조금 걸으니 금방 주변이 조용해졌다.

그래도 술 같이 마셔줬는데, 하고 놓고 온 친구를 마음에 걸려하다가 갑자기 든 생각에 빙글 몸을 돌려 물었다.



"지금 어디가는 거야?"

"너희 집? 취했잖아. 데려다줄게."

"아..."

"왜, 이쪽 아니야?"

"아냐. 이쪽 맞아."



그럼 됐네- 하더니 곧 무슨 생각이 났다는 듯이 저를 바라보곤 얘기를 꺼낸다.

아, 내가 아까 그쪽 골목 가는데 고양이 가족이 있는 거 있지. 너무 귀여워 진짜. 막 나보고 야옹거리길래 심쿵해서 고양이 전용 참치캔 사줬어. 그리구 얼마전 일인데, 내 친구중에 장난끼 진짜 많은 애가 있거든? 성우는 아니고. 걔도 진짜 장난 잘 치긴 하는데, 그치. 쨌든 그 장난끼 많다는 애가 내 인스타를 해킹한 거야. 그러고선 자기 동영상 올리구 내 엽사도 올리구 와 장난 아니었어. 그거 완전 못생겼단 말야...


선호는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기분이 묘했다.

이렇게 사소한 얘기를 하는 것이, 어쩐지 더 간질간질하게 다가오는 게 저가 오늘 많이 취한 것도 같고...

그런 기분을 털어내려 고개를 저었다.

서로 잘 알지 못하는데 참 밝기도 하다, 싶어 민현에게 괜히 심통을 부리고 싶어졌다.


너, 날 알면 별로 안 좋아할 거 알아.


저는 그리 밝은 사람이 아니니까.

입술을 이로 꾹 물다 가만히 입을 열었다.



"민현아."



응? 하고 바라보는 게 느껴졌지만 건조한 아스팔트 바닥만 바라보면서 말을 꺼낸다.

한번도 한 적 없었는데.



"난 말이야..."



* * *



선호를 집 앞까지 데려다 준 후에 제 집으로 온 민현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참 먹먹하다.


한숨을 푹 쉬고 부엌으로 가 냉장고에서 차가운 물을 따라 입안에 머금고 멍하니 서있는다.

진하게 빠진 눈매가 고민스레 쳐졌다.

물을 꿀꺽 삼키고 욕실로 가 욕조에 물을 받기 시작했다.

세면대를 손끝으로 건드리다 거울을 바라봤다.

거울속에 있는 이도 황민현이다.

그 황민현이가 조금 우울한 눈을 하고 있었다.

왜 그래애, 하면서 눈을 치켜올려준다.

서서히 김이 서리는 거울에 두 개의 선이 그어졌다.

동떨어져 있는 그것들을 바라보다 끝부분을 이어버린다.


얍, 만났다.


욕조에 받아지는 물은 이정도면 됐다 싶어 수도꼭지를 잠그고 물에 손을 넣어 온도를 확인했다.

따뜻하네... 하며 발부터 살살 몸을 담궜다.

차츰 천장에 물방울이 맺히더니 톡 하고 떨어진다.

마치 유선호가 우는 것만 같아 마음이 찡해진다.


물론, 선호는 울지 않았지만.


민현은 코끝을 살짝 문질렀다. 온갖 생각이 밀려온다.

선호는 제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해 나갔다.


엄마는 여덟살때 나랑 시내에 나갔다가 천방지축으로 뛰어대던 날 잡으려 재빨리 차도에 내려섰다가 그만, 교통사고를 당해버렸어. 엄마가 꼭 안아줘서 나는 무사했거든. 근데 엄마는 있지, 먼저 떠난 아빠를 너무나 사랑해서, 그대로 따라가버렸어. 그때가 새아빠랑 재혼한지 얼마 안됐을때였던 거 같아. 새아빠가 병실와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엄마보다가 나를 힐끗 봤다? 어색했어도 나를 참 따뜻하게 바라봐주던 사람이었는데 말이야... 새아빠는 엄마를 많이 좋아했었나봐. 그 사람의 눈이 너무나도 공허해서 그때는 엄마를 잃은 것보다 그게 더 무서웠지 뭐야. 어쨌든 어찌할지 몰라서 새아빠 따라 일단 집에 왔어. 평소에 그렇게 따뜻하던 집이 그날따라 유난히도 크고 차갑게 느껴지더라. 그 날 이후로 새아빠는 날 피하려고 그랬는지 아침일찍 나가서 한밤중에 들어왔어. 내가 아침 먹을건 식탁에 차려놓고, 나머지는 냉장고에 넣어놓고. 주말에만 가끔 마주쳐도 새아빠는 어딘가 힘없는 미소를 지어주고 다시 밖으로 나가곤 했어. 그러다가 어느날 새벽에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깨서 거실로 나왔는데, 평소에 술 못마시던 분이 잔뜩 취해 들어와서는 뭐라는 지 알아? 참 징그럽다, 너도. 응, 이 기억때문인가보다. 내가 징그럽다는 말이 싫어진건. 어린 마음에 굳어서 서있는 나에게 새아빠는 널보면 네 엄마 생각이 난다면서 얼굴 보고싶지 않다고 하는거야. 그렇게 그 사람이 방으로 들어간 후에도 난 계속 그자리에 서있었어. 난, 누군가에게 끔찍한 존재가 되어버렸구나 싶더라. 결국 일년도 안돼서 나는 외할머니께 맡겨지고 새아빠는 딴데로 떠났어. 어디로 가버렸는지 아무도 몰라. 딱히 알고싶어하는 사람도 없고, 나도 그렇고.


말하던 중간에 선호의 집앞까지 왔지만 누구도 이야기를 멈추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저 근처의 벤치에 앉아 묵묵히 얘기하고, 묵묵히 들어줬을 뿐이었다.

선호는 말이 끝나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나 지금은 잘 살아. 할머니는 스무살때 돌아가셔서 나혼자거든. 돈도 나 하나 잘 먹고 잘 지낼만큼은 벌어.


민현은 그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배웅하는 인사가 전부였다.

데려다줘서 고마워. 응, 들어가. 그리고 들어준 것도. 응. 잘자고...


따뜻한 물에 잠겨있자 몸이 노곤해진다.

지금에서야 생각이 드는 거지만 말해준 거, 고맙다고 할걸 그랬나 싶었다.

말을 하는 선호의 손이 살짝씩 불안하게 흔들리는거, 모르는 척 하기 바빴지...

젖은 머리카락이 눈가를 간질였기에 민현은 손을 올려 머리를 쓸어넘겼다.


유선호에게, 관심이 간다.


물이 들어간 듯 따가워져 오는 눈을 슥슥 비볐다.


그래, 인정하자면 그 이상임에 틀림없다.

선호가 저를 처음 본 것은 성우와 함께 있을때지만, 자신은 더 전이었다.

성우였는지 우진이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았다. 어쩌면 아까 파일을 건네 줬던 그 친구일 수 도 있다.

누군가의 갤러리에서 본 선호가 너무 예쁘게 창밖을 내다보길래, 그 순간부터 머릿속에 남았다.


길에서 실제로 본 선호는 더 생생했다.

어딘가 할말을 가득 담고 애써 속으로 재우며, 삼키며 그렇게 달려가고 있었다.


첫 눈에 반해버렸다.


욕조에 담긴 물을 손으로 떠서 높이 올렸다가 떨어뜨린다.

쪼록 하니 물방울을 튀겨대며 제자리로 돌아온다.


어떠한 사람이 자신에게 전부를 내비친다는 건,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다.

민현은 제가 막중한 기대감을 떠안았다는 것을 알았다.

분명 저는 감당할 것이 많아질 것이었다. 함께 먹먹해야할 것이었다.

선호의 감정같은 거, 달래줄 수 있을까?

이상하게도 막연한 자신감이 생겨났다.

첫 눈에 반한다는 말같은 걸 한순간에 믿게 해버린 사람이 유선호다.

아무렴 좋다는 생각이 마구 피어났다. 선호의 곁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걸.

저는 어떤 사람이냐며 묻는 말에 참 예쁜 사람, 이라고 대답한 건 진심이었다.

무엇을 하든지, 무엇을 보든지 간에 너무나도 예쁜 사람이니까.


아, 우리 선호 보고싶다.

아까 저를 멍하니 바라보는 게 귀여워 웃었었는데.

다시 생각하니 또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이 이게 병이라면 정말 중증 환자가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좋아하는데 어쩌겠어.


직접 정의하고보니 부끄럽다.

이게 뭐야, 하며 눈을 손으로 덮었다.

오늘밤은 길어질 것 같았다.



* * *



다음 날 심각한 숙취와 함께 잠에서 깬 선호가 핸드폰을 열어 처음 본 것은 열두시라는 시간과 여러통의 문자였다.

쓰려오는 속에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문자를 하나하나 읽던 눈길이 멈춘 건 처음보는 번호로 온 문자를 읽었을 때였다.


뭐야, 이거?


황민현이었다.

일어나면 속쓰릴 테니 해장하러가자며 보면 연락달란다.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다 다시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연락을 해야할까 말아야할까.


사실 제가 취할 행동은 정해져있었다.

망설임없이 모든 문자를 다 삭제하고 민현에게만 답장을 보냈다.

입술이 바짝 말라왔다.





"선호야, 여기."

"...안녕."

"좋은 아침."



식당에 들어서자 창가의 끝쪽 자리에서 민현이 저를 불렀다.

딱 좋아하는 위치였기에 기분이 살짝 묘했다.

선호가 자리에 앉자 자연스럽게 콩나물국밥 두개를 주문하고 빙글거리며 웃는다.

여기 콩나물국밥 완전 맛있거든. 괜찮아? 응, 그거 좋아해. 다행이다.

음식이 나오길 잠시 기다리는데, 왠지 머뭇거리는 듯 했던 민현이 입을 열었다.



"첫 눈에 반한다는 말, 어떻게 생각해?"

"글쎄..."



첫 눈에 반한다, 라.

잠시 생각하던 선호가 대답했다.



"그건 그 사람의 외모만 보고 좋아하는 게 아닐까? 진정한 사랑은 아니지싶은데..."
"그럼 한 번 말고 두 번 만났는데, 두번째에 그 사람이 말하는 거랑 행동 하나하나가 신경쓰여서 어쩔 줄 모르게 되어버렸으면? 그때도 반했다 싶으면?"



어쩐지 선호는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민현이 강아지 같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풋 하고 웃음이 나왔다.

조금 귀엽네.



"그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어버린 거지 뭐."



젓가락을 양손에 한짝씩 잡고 끝을 챙 하고 부딪혔다.
사람과 사람이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다.
말하고 보니 저가 민현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리 긴 시간도 아니었는데.

제 얘기를 묵묵히 들어주고 저를 피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렇게 다정하게 바라봐줬기 때문이었을까.

그래, 첫 눈에 반한다는 건 이런거였나보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아니, 그냥 저 사람이 하는 모든 것이 이유가 되어버린 채 가볍게 빠져들어 가는 것. 

그러니 누군가를 밀어내기 바빴던 제가, 황민현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됐어."



응, 진심으로... 뭐?


제가 내뱉은 줄 알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니다.
놀라 민현을 바라보자 어딘가 나른한 웃음을 지어왔다.

심장이 살짝 떨리는 듯 싶었다.



"황민현이, 유선호를."



그러니까...
침을 꿀꺽 삼키고 민현의 눈에 제 눈을 맞췄다.
그곳에 비친 저는 작게 반짝이고 있었다.
황민현과 함께하면 괜찮지 않을까.
어느 곳인가 망가져버린 유선호를 감싸줄 것 같았다.



"좋아해."



이번에는 민현이 눈을 깜빡일 차례였다.
선호도 웃었다. 세상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는 듯이 그렇게, 밝게.
창가로 새어들어오는 햇빛이 마냥 눈부시지만은 않았다.
손에 맞닿은 서로의 체온마냥 참 포근하고 따뜻해서, 그 둘은 처음으로 이 세상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눈에 반한다는 건 w.해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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