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비비빅- 삐비비빅-



아침이라기엔 조금 이른 여섯시 반의 조용한 오피스텔 1804호를 깨운 건 단조로운 기계음의 알람소리였다.

하얀 베개에 얼굴을 묻고 곤히 잠에 빠져있던 민현이 소리에 얼굴을 찌푸리며 느릿느릿 몸을 일으켜 세웠다.

더듬더듬 침대옆의 핸드폰을 당겨와 알람을 끄고 시간을 확인한 그는 잔뜩 헝크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려 애쓰다

관두고는 멍하니 방을 둘러보다 침대에 다시 누워버렸다.

째깍거리며 시곗바늘이 움직이길 삼십분. 7시... 육개월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 전화를 해올 시간이었다.

벌써 반년이나 흘렀는데 왜 잠시의 빈시간만 되면 이렇게 떠오르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머리에 팔을 올려놓고 천장만 물끄러미 바라보던 민현이 일어선 건 오늘 있을 미팅이 떠오른 후였다.

매사에 신중을 기하는 그였기에 사소한 -아니 사소하다 라는 것이 그의 사전에는 없을지도 모른다- 미팅에도

신경을 쓰곤 했다.

오늘은 단정하게 그냥 검은 수트.

머릿속으로 할일을 주욱 나열하며 그는 욕실로 들어섰다.



-오늘 날씨는 곧 다가오는 장마의 영향으로 매우 흐릴 것으로 예상되며, 중부지방에는 비가 내릴 전망입니다.



장마? 비?


옷을 갈아입으며 틀어둔 TV에서는 일기예보가 나오고 있었다.

한여름에 장마전선이 완벽하게 콜라보하는 그런 장면따위 그닥 좋아하지 않는데.

팔짱을 끼고 뉴스가 끝을 맺길 묵묵히 기다리다 TV를 끄고 가방과 차키, 그리고 오늘의 애장품 우산까지 챙겨나왔다.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에 탄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에어컨을 켜는 것이었다.

비가 오긴 하려는지 무진장 습하다.

핸드폰을 열어 확인한 시각은 8시. 서울에서 10시 미팅이니 뭐라도 먹고 천천히 갈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냐, 출근시간이니 막힐 거야.

천천히 차를 몰아 도로를 달리다가 올려다 본 하늘은 회색빛으로 가득할 뿐 아직 비가 내리진 않았다.



그리고 집에서 나올 때 했던 생각이 현실로 이루어졌다.



"엄청 막히네..."



가다 서다를 얼마나 반복했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조금 지칠 것 같은 느낌에 라디오를 틀었다. 



-네! 오늘의 게스트는요~ 요즘 화제가 되는 실력파 신인이죠? 마성의 목소리를 가진 김재환씨! 모셔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FM꽃이 피었습니다 에 함께하게 된 가수 김재환입니다.



응? 김재환?

익숙한 이름에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던 고개를 돌려 라디오에 시선을 고정했다.



-네, 아우, 잘생기셨네요~

-아유, 아닙니다. 실물이 더 예쁘시네요~

-아이 말도 참 잘하셔. 우리 재환씨, 그나저나 신곡 꽃처럼 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잖아요? 곡 소개좀 해주세요~

-아 네. 꽃처럼 아름다웠던 첫사랑을 떠올리며 쓴 곡입니다.

-첫사랑이라... 첫사랑은 이루어지기 힘들죠~ 슬픈 곡인가요?

-뭐... 첫사랑은 못 이뤘지만 그래도 너를 사랑한 내 마음과 순간은 꽃처럼 아름다웠다 이런 가사가 중간에 나오거든요.

 이루지 못한 사랑은 슬픈 한편에, 그 나름대로 아름다움과 추억이 있다고 생각해요.

-아하, 그렇군요. 그럼 또 안 들어 볼 수 없죠. 김재환씨의 꽃처럼! 라이브로 함께하시겠습니다.

-네에.



그 김재환이다.

숨 막히는 고속도로의 정체구간에서 민현은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다.

저와 대학교때 만나 맞는 것도 많고 성격도 좋아 저를 졸졸 따라다니던 그에게 잘해주곤 했었는데.

가수를 준비한다더니 정말 되었나보다.



'민현이형, 제 노래 한번 들어보실래요?'

'좋지.'

'Marry me- 내 손 잡아줄래요. Marry me- 나와 평생 함께할래요.

남은 나의 모든 삶 오직 그대...'

'형! 민현이형! 또 저사람이랑 같이 있어요? 전화도 씹고!!'



이건 민현과 재환 이외의 목소리였다.

급작스레 치고 들어온 기억에 민현은 눈을 의식적으로 깜빡였다.

통통 하는 효과음이 들릴 것같은 목소리로 민현을 불러대며 뛰어온 그에게 그때의 황민현은 예쁘게 웃어주었다.



'아 미안, 못 봤지 뭐야.'

'꼬맹아 끼어들지 말고 안갈래? 성스러운 공원에서!'

'베에- 그쪽이 아니라 우리 민현이형 보러온 거거든요? 오늘 데이트하기로 했단 말이에요!'

'누가 뭐래? 꼬맹이 주제에.'

'키는 그쪽보다 크거든요?'

'둘다 그만해. 그나저나 재환이 노래 잘부르는데? 그거 내가 좋아하는 노래야. 다음에 또 불러주는 거 잊지말고. 간다.'

'내일 봐요 형!'

'내일 보지마요!'

'넌 안 볼거거든?'

'그만하고, 이리와. 유선호.'



유선호.

애써 가라앉히려했던 이름이 잔뜩 흐린 날 부력을 가득 안고 떠올랐다.

민현은 에어컨에 건조해진 얼굴을 쓸어내렸다.

라디오에서는 재환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공부만 잘하는 줄 알았던 친구가 노래도 좀 하네 라는 생각을 그땐 했었던 거 같은데.

어느새 조금이 아니라 정말이 되어버렸다.



-미처 피어나지 못해도 괜찮아요

그대를 바라본 그대를 느끼던

그 모든 순간이  그 마음이

내 가슴속에 꽃처럼 아름답게 맺힐 테니까



재환의 첫사랑이라... 누굴까나.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려다 어설픈 서칭에 누군가가 자꾸 걸려 생각하는 걸 그만뒀다.

직접 물어보는 게 낫겠네.

핸드폰을 열어 재환의 번호를 찾아 메세지를 작성했다.



[라디오 잘 듣고 있어. 노래 좋다.]



전송.

푸- 하는 한숨을 쉬며 꾸물대는 하늘에 더불어 꾸물대는 고속도로에 집중했다.

다시 조금 앞으로 나아갈 시간.



* * *



"수고하셨습니다!"



한시간 반 동안 진행되던 라디오가 끝나고 스텝들에게 꾸벅 인사를 건네던 재환은 남몰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제가 오늘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도통 생각이 나질 않았다.

긴장한 것과는 달리 제 자신은 술술 안하던 말도 하고 노래도 평소보다 잘했던 것 같은데...

무슨 정신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고개를 저으며 핸드폰을 켰다.

안 읽은 메세지 한통에 생수를 마시려던 손을 멈추고 문자 메세지 함을 열었다.



[라디오 잘 듣고 있어. 노래 좋다.] -황민현♥️



헉 하고 숨을 들이쉰 재환이 금방이라도 핸드폰에 들어갈 듯 한 모양새로 메세지를 다시 읽었다.

아니, 발신인을 읽은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황민현이라니, 이게 얼마만인지.



민현은 민현 나름대로 선호와의 일때문에 바쁘게 자신을 굴렸고, 재환은 꿈을 좇아 연습에 매진했기에 서로 안부를

물을 시간도 없었던 터라 이렇게 하는 연락도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뭘 해야하지, 전화? 해도 되려나...



재환은 침을 꼴깍 삼키고는 조심스레 메세지를 보냈다.



[형 전화돼요?]

[어 전화해]



얼마 안되어 날아온 답장에 재환은 두근대는 마음을 눌러담고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형!! 이게 얼마만이에요?!"

-아하하, 그러게 말야. 진짜 오랜만이네.

"그동안 연락도 없더니만."

-바빴지... 너 노래 냈으면 연락하지 그랬냐. 라디오 듣고 깜짝 놀랬잖아.

"아이 저도 바빴죠. 형 지금 회사아니에요?"

-아, 오늘 미팅때문에 서울 올라와있어.

"아 정말요? 그럼 이따 저녁에 시간 돼요?"

-나야 괜찮은데, 넌 안 바빠?

"저 내일 일본 나가서요. 오늘은 스케줄 라디오가 끝이에요."

-그래, 그럼 한번 보자. 아, 곧 미팅가야겠다. 이따 봐.

"네, 끝나면 연락 주세요."

-어어.




전화를 끊은 재환이 주먹을 쥐고 예쓰-! 라며 방방 뛰어댔다.

대박사건, 대박. 어디가지? 형이 뭘 좋아했더라. 옷 이상한가... 갈아입고 가야겠다.

잠시 중얼대던 그는 곧 매니저형을 찾아 근처 맛집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얼마만에 하는 꽃과의 재회인데 허투루 보낼 수 없다면서.



* * *



9시 46분이라...



재환과 전화를 끊은 뒤 시계를 본 민현은 근처 카페로 들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적당히 뻐기다 바로 옆건물인 본사 1층 로비에서 부장을 만나 상대 직원을 소개받고 가서 계약을 해와라 이거지?

우리쪽으로 온다는 것 보니 이쪽이 유리한 내용이었을텐데, 뭐였더라.



민현은 커피가 나오길 기다리며 카운터를 손톱끝으로 톡톡 두드리며 속으로는 할 말을 가만히 정리했다.

그쪽도 아침 안먹었으면 가서 먹자고 할까, 어디가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금방 나온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목을 축이다가 카페를 나섰다.

딸랑-하는 종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나와 본사로 가는데 빗방울이 점점 쏟아지기 시작했다.

 


결국 오는 구나, 비.



우산을 펴기는 귀찮아 그냥 손으로 머리만 가리고 건물로 뛰어들어갔다.

가볍게 손을 털며 로비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던 그의 시선 끝에 익숙한 뒤통수가 걸렸다.

그럴리 없다며 부정하며 떨리는 눈동자에 콕 들어박힌 사람의 뒷모습은 아프도록 당당했다.

머리는 맞다고 하는데 인정할 수 없다는 듯이 심장이 뛰어댔다.

그의 옆에 있던 부장이 민현을 보고 팔을 들어 이쪽이라며 흔들었다.

그리고, 그가 민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민현은 낯익은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깨달았다.



한순간도 널 그리워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



"...선호야."



놀란 선호의 토끼같은 눈을 보며 민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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